성인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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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산성지의 성인을 소개합니다.

성 앵베르 라우렌시오 범 주교

조선의 제2대 교구장
한국명 범세형 | Imbert, Laurent Marie Joseph [1796-1839]

1796년 4월 15일 프랑스에서 태어난 주교님은 1819년 12월 18일 파리 외방전교회의 사제가 되어,
다음해 3월 20일 프랑스 파리를 떠나 중국 사천교구로 가서 전교 활동 중 조건 교구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주교님은 조선 땅을 처음 밟은 주교가 되었고,
그보다 앞서 입국한 모방 베드로 나 신부님, 샤스탕 야고보 정 신부님과 힘을 합쳐 전교에 힘쓴 결과 1839년 초에는 신자 수가 9,000명을 넘게 하였습니다.

1839년 지방교우들을 돌아보며 성직자 양성에 힘쓰던 중 앵베르 라우렌시오 범 주교님을 비롯한 선교사들의 조건 입국 사실이 당국에 알려져 교우들에 대한 박해가 더욱 가열 되었습니다.

이때 한 배교자에 의해 주교님의 거처가 알려지고, 앵베르 라우렌시오 범 주료님은 다른 교우들에게까지 화가 미칠 것을 염려하여 스스로 관가에 나아가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이어 얼마 뒤 앵베르 라우렌시오 범 주교님으로부터 자수를 권고받은 모방 베드로 나 신부님, 샤스탕 야고보 정 신부님과 함께 1839년 9월 21일 군문효라는 특별한 절차로 한강 새남터에서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이때 그의 나이 43세로 조선에 입국한 지 불과 2년 만이었습니다.

그 뒤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 전래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하신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성 모방 베드로 나 신부

한국명 나백다록 | Maubant, Pierre Philibert [1803-1839]

모방 베드로 나 신부님은 프랑스 바시(Vassy)에서 태어나 1829년 5월 13일 사제가 되었습니다. 1831년 파리 외방전교회에 들어가, 이듬해 3월 중국 사천(四川) 교수 선교사로 임명되었으나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Bruguiere) 주교를 만나 조선의 선교사가 되기로 자원하여 최초로 조선에 입국 한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모방 베드로 나 신부님은 한글을 공부하면서 교우촌을 방문하여 630여 명에게 성사를 집전하고 270여 명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또 신부님은 조선인 성직자 양성을 위해 1836년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최양업(崔良業, 토마스), 최방제(崔方濟, 프란치스코) 등 세 소년을 뽑아 마카오에 있는 페낭 신학교로 보내 훗날 최초의 방인 사제가 되게 하였습니다.

1837년 샤스탕 야고보 정 신부님과 교구장 앵베르 라우렌시오 범 주교님이 입국하게 되어 새 공소를 세우고 교우들에게 필요한 지침들을 만들어 주며 교회 조직을 갖추어 나가며 교세확장에 힘을 기울였으나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면서 많은 신자들과 함께 순교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체포된 앵베르 라우렌시오 범 주교님은 모방 베드로 나 신부님과 샤스탕 야고보 정 신부님에게 자수할 것을 권고하여 1839년 군문효수라는 특별한 절차로 사형되어, 9월 21일 새남터에서 37세의 나이로 순교의 월계관을 쓰게되었습니다.

성 샤스탕 야고보 정 신부

한국명 정아각백 | Chastan, Jacques Honere [1803-1839]

샤스탕 야고보 정 신부님은 1803년 10월 7일에 프랑스의 마르쿠(Marcoux)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826년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조선 선교사로 지원한 그는 조선 입국에 먼저 성공한 모방 베드로 나 신부님의 도움으로 1837년 1월 1일 국정 변문을 무사히 넘었습니다.

한양에 도착한 샤스탕 야고보 정 신부님은 한글을 배우는 한편, 지방 교우촌을 순회하면서 처음으로 교세 조사를 하여 6,000명의 신자를 확인하고 성무를 이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주교를 비롯한 세 서양인 성직자가 조선에 들어와 있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자 앵베르 라우렌시오 범 주교님은 교우들에게 피해가 갈까 염려되어 자수를 하였습니다. 앵베르 라우렌시오 범 주교님께서는 신자들의 고통을 염려하여 모방 베드로 나 신부님과 샤스탕 야고보 정 신부님에게도 자수를 권하였습니다.

세 분 목자의 특별한 사형절차는, 두 손을 뒤로 돌려 묶어 형장으로 끌고 갔으며, 사형장에서는 세 붐 성직자들에게 바지만 남기로 모두 벗긴 채 두 손을 앞으로 묶고 긴 막대기를 두 팔 밑으로 넣고, 두 개의 화살로 양쪽 귀를 위아래로 뚫었습니다. 그리고 얼굴에 횟가루를 뿌리고 사형장 주변을 세 바퀴 돌고나서 세 분 성직자들에게 무릎을 꿇게 한 뒤, 다시 말뚝에 붙들어 매단 후 12명의 사형집행관들이 둘러싸고 돌면서 사향을 집해앟였습니다. 그 때 성 앵베르 라우렌시오 범 주교님의 나이는 43세, 성 모방 베드로 나 신붖님과 성 샤스탕 정 신부님의 나이는 37세였으며 조선에 입국하여 활동한 지 2년 9개월만의 일이었습니다.